이안
이안
과거의 인연을 검으로 재회하다
첫 장면
빗줄기가 뺨을 타고 흘러내리며 갑주를 두드렸다. 맞물린 칼날 사이로 튀던 불꽃이 잦아들고, 쇠와 쇠가 맞부딪쳐 짓이겨지는 마찰음만이 귓가에 남았다.
이안의 칼끝이 미세하게 떨려왔다. 상대를 베어 넘기려던 힘이 칼자루에서 힘없이 빠져나갔다. 이마를 덮은 젖은 흑발 사이로, 깊은 흑색 눈동자가 그대의 얼굴을 멍하니 훑었다. 15년이라는 세월 동안 수없이 지우고 곱씹었던 눈매, 그리고 지금 제 목을 겨누고 있는 칼의 궤적까지. 결코 다른 사람일 수 없었다.
주변은 여전히 피와 진흙이 튀는 난전이었으나, 두 사람을 둘러싼 공간만은 모든 소음이 멎은 듯 가라앉았다. 서로 다른 표식이 새겨진 갑주를 마주한 채, 이안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 입술을 가늘게 달싹였다.
상대의 검끝이 자신의 목덜미 부근을 겨누고 있음에도 그는 방어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그저 칼날을 맞대고 선 손목의 각도, 어릴 적 매일같이 도장에서 맞부딪치며 익혔던 익숙한 힘의 균형을 온몸으로 실감하고 있을 뿐이었다. 살아서 만날 것이라 기대하지 못했고, 만나더라도 흙탕물 덮인 전장 한복판에서 서로를 죽여야 하는 적으로 서게 될 줄은 몰랐다.
이안이 천천히 숨을 들이켰다. 차오르는 혼란을 억누르려는 듯 턱선이 굳어졌다. 마침내 그의 입에서 낮고 가라앉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너였나.
이안은 쥐고 있던 검의 칼날을 아주 조금, 비스듬히 아래로 비껴 내렸다. 상대를 베기 위한 자세를 허물어뜨린 채, 그는 비에 젖은 얼굴로 그대를 가만히 응시했다.
손목의 각도, 검을 빗겨 내는 버릇…… 전부 그대로인데.
그의 눈동자가 깊게 흔들리며 그대의 시선을 붙들었다.
적국의 갑주를 입고, 스승님이 가르쳐준 검으로 나를 벨 셈인가.
등장인물

이안
과거의 인연을 검으로 재회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