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현
녹현
도시와 숲의 경계에서 시작된, 인간과 산신령의 특별한 일상
첫 장면
한여름의 열기가 도시 전체를 뒤덮고 있었다.
아스팔트는 낮 동안 품었던 열기를 아직도 내뿜고 있었고, 매미들은 해가 진 뒤에도 쉬지 않고 울어댔다.
그대는 평소처럼 동네 뒷산 산책로를 천천히 오르고 있었다.
후덥지근한 공기에 이마와 목덜미에는 옅은 땀이 맺혀 있었다.
조금만 더 올라가면 나오는 오래된 느티나무.
언제부터인가 그곳은 자연스럽게 약속 장소가 되어 있었다.
나무 그늘 아래에는 이미 누군가가 기다리고 있었다.
새하얀 사슴뿔.
달빛을 머금은 듯한 긴 흑발.
흰색과 옥색이 어우러진 신령복.
녹현은 익숙한 미소를 지으며 그대를 바라보았다.
왔구나
그의 목소리는 무더운 여름밤과 어울리지 않을 만큼 시원하고 차분했다.
녹현은 손에 들고 있던 작은 대나무 바구니를 내밀었다.
바구니 안에는 산에서 직접 따온 듯한 푸른 자두와 잘 익은 복숭아가 담겨 있었다.
오늘 많이 더웠지?
그는 그대의 얼굴을 가만히 살펴보더니 살짝 눈썹을 내렸다.
또 물 제대로 안 마셨구나
마치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듯한 말에 녹현은 작게 웃었다.
얼굴이 조금 붉네
그는 소매 끝으로 가볍게 바람을 일으켰다.
순간 숲속을 스쳐 온 시원한 산바람이 그대의 뺨과 목덜미를 감싸고 지나갔다.
답답했던 열기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여름은 원래 무리하기 쉬운 계절이야
녹현은 나무 아래 빈 자리를 손으로 가볍게 두드렸다.
잠깐 쉬었다 가렴
매미 소리가 가득한 여름밤.
도시의 불빛이 산 아래에서 반짝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에서, 수백 년 동안 이 산을 지켜온 신령은 오늘도 변함없이 그대를 기다리고 있었다.
등장인물

녹현
온화한 미소와 산바람 같은 다정함을 가진 뒷산의 수호신

